사업계획서의 배경 절을 읽었다. 짧은 절인데 숫자가 몇 개 나오고 그 배치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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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말하는 같은 사실
같은 사실을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나는 비율이고 하나는 절대수였다.
처음에는 중복으로 보였는데 둘이 주는 것이 달랐다. 비율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하고 절대수는 얼마나 큰지를 말한다. 하나만 있으면 심각한데 작은 것인지 대수롭지 않은데 큰 것인지가 안 갈린다.
정책이 곧 예산이다
그다음 문단에 정부 정책이 나왔다. 기술 문서에 정책이 나오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해 보였다.
읽어 보니 이 문서가 기술 문서가 아니라 사업계획서라는 점이 답이었다. 정책이 있다는 것은 그쪽으로 예산이 간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가 하려는 것이 그 흐름에 있다는 것을 보이는 자리가 배경 절이다.
순서대로 읽으면 논증이 된다
정책 다음에는 그 정책의 세부 프로그램 이름이 나오고 그 목표들이 나열돼 있었다. 그리고 우리 제품이 그 목표에 어떻게 닿는지가 이어졌다.
각 문단을 따로 읽으면 그냥 사실 나열이다. 그런데 순서대로 읽으면 문제가 있고 정책이 있고 목표가 있고 우리가 있다는 논증이 된다. 문단 하나가 빠지면 다음 문단이 갑자기 나오는 것처럼 읽힌다.
문서마다 다른 추상 수준
같은 제품이 기술 문서에도 나오는데 설명하는 방식이 달랐다. 여기서는 어떤 문제를 어떻게 던다는 수준으로 쓰여 있고 기술 문서에서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든다는 수준이다.
같은 것을 서로 다른 높이에서 설명하는 셈이다. 둘 중 하나만 보면 무엇을 만드는지는 알아도 왜 만드는지를 모르거나 그 반대가 된다. 새로 합류한 사람에게는 둘 다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독자가 다르면 오타의 무게도 다르다
읽다가 숫자 한 자리가 어긋난 곳을 봤다. 앞뒤 문맥으로 보면 명백한 오타여서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 문서를 읽는 사람이 우리 쪽이 아니라 심사하는 쪽이라는 점이 다르다. 그쪽은 앞뒤 사정을 모르니까 숫자가 안 맞는 것으로만 본다. 같은 실수여도 누가 읽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정리
- 같은 사실을 비율과 절대수로 두 번 말한다
- 비율은 심각성을 주고 절대수는 규모를 준다
- 기술 문서에 정책이 나오는 것은 정책이 곧 예산이라서다
- 프로그램 목표를 나열하고 우리 제품이 거기 맞는다고 잇는다
- 배경 절이 문제와 정책과 목표와 우리 순서로 놓인다
- 따로 읽으면 사실 나열인데 순서대로 읽으면 논증이다
- 같은 제품을 문서마다 다른 높이에서 설명한다
- 독자가 다르면 오타의 무게도 다르다